스트리밍 서비스가 날로 활성화되고, 스트밍으로 음악을 듣기 위한 유료 계정 하나씩은 다 가지고 있는 세상에서 굳이 LP판으로 음악을 듣겠다는 사람들이 있다.
LP판으로 재생되는 소리가 디지털 음원보다 귀에 편하다는 얘기도 있는데, 조금만 생각해보면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LP판에 새겨진 소리가 아날로그 방식이라도, 진짜 축음기가 아니고서야 어차피 디지털 신호로 전환되어 스피커로 출력된다.
심지어 요즘 노래는 애초에 만들때부터 컴퓨터로 만든다. 이걸 스트리밍으로 들으면, 디지털 신호로 저장된 음악을 스피커로 출력하는 변환만 거치지만, LP로 들으면 디지털 신호로 저장된 음악을 아날로그적 기법으로 LP에 새기고, 이를 턴테이블이 읽어서 다시 디지털 신호로 스피커에 넘겨서 소리로 출력된다. 이게 무슨..
예전 노래라고 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제는 일렉기타소리는 고전 팝에서나 듣는다. 퀸의 브라이언 메이가 일렉기타 현을 튕기는 동작은 디지털로 전환되어 기계음을 만들고, 이 소리를 LP에 새기고.... 마찬가지로 몇번의 전환과정을 거쳐 귀에 전달된다.
LP로 듣는 노래가 편안하다는 것은 LP특유의 잡음이 익숙함과 추억을 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기능적인 면에서도 어이없긴 마찬가지다. 플레이리스트를 마음 것 만들고 편집할 수 있는 스트리밍 세상이지만 LP판은 미리 새겨져 있는 플레이리스트만을 들어야 한다. 몇 시간씩 연속재생을 할 수 있는 세상이지만 LP판은 5곡 정도 들으면 판을 뒤집어줘야 한다. 말만 해도 알아서 원하는 노래를 찾아주는 세상이지만 원하는 LP를 골라줘야 한다. 한달에 몇천원 유료결제만 하면 원하는 음악을 마음 것 들을 수 있는 세상이지만 턴테이블을 사고 고가의(오래된 LP들은 대부분 희소해서 굉장히 비싸다!) LP판을 사서 노래를 듣는다. 바늘관리며 판의 먼지관리며.. 손과 돈이 가는 일들 투성이다.
이쯤되면 LP판으로 굳이 노래를 듣겠다는 사람은 현대문명의 이기를 거부하는 미련한 종교집단처럼 보인다. 인류여 이게 최선인가. 이 사람들을 살려두어도 괜찮은걸까.
그래서 그런 사람이 되어봤다.
지인에게 추천받은 입문용 장비들을 인터넷으로 주문하고, 다음날 가까운 LP 레코드샵을 가서 몇장 골라봤다. 생각보다 더 불편하다. 몇 명의 고전 아티스트들을 염두에 두고 판을 뒤적거렸는데, 내가 알만한 유명 노래들로만 이루어진 판이 하나도 없었다. 내가 알만한 노래는 각 앨범의 대표곡 같은 것들인데, 앨범이 제각각이니 한 판에 담겨있는 경우가 없는 것 같았다. 굳이 따로 발매한 스페셜 판 같은게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런건 또 인기가 많은건지 내가 간 작은 샵에서는 찾기 힘들었다.
그래도 이것저것 몇 장 골라산 후 집에 와서 설레는 마음으로 틀어보았다.
어떤 판은 지직거리는 잡음이 포함되기도 했고, 어떤 판은 같은 곳에서 걸려서 계속 반복되는 소리를 내기도 했다.(이건 샵에 다시 가져가봐야겠다)
그래도 전반적으로 듣고 있으니 기분이 좋다. 백색소음이 포함된 소리랄까.. 라이브 같은 느낌이랄까.. 사실 구글 홈 미니로 듣다가 전용 블루투스 스피커를 사서 소리가 좋게 들리는 건지, LP판 소리라서 좋게 들리는 건지 잘 모르겠기도 하다.
그리고 소리를 홈을 새겨 저장하고 바늘로 이것을 읽어온다는 원리가 정말 신기하게 느껴졌다. 아니 컴퓨터가 알아서 음악을 만드는 세상에서 반 세기 전의 소리저장 기술이 신기하다니... 생각이 들면서도 정말로 신기했다.
취미라는 것은 주변에서 추천해서 억지로 가져볼려 해도 가져지지 않기도 하고, 또 어떤 것은 나는 즐거운데 주변에서는 미친놈 취급하는 분야도 있다. 아마 LP수집은 좋은 취미가 될 것 같은 느낌..
이제 나도 문명의 이기를 거부하는 이상한 사람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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