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세상에서도 사장되지 않을 '근본 스킬'(https://rootsoo.tistory.com/34) 이란 글에서 새로운 기술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는 멍청한 '기득권'이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하며, 동시에 사장되지 않을 근본 스킬이 필요하다고 말한 적 있다.
그런데, 요즘은 다른 방향으로 생각이 확장되고 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챗지피티에 사소하고 잡다한 질문을 모두 물어가며 쉽고 빠르게 정답을 얻어내고 있었다. 특히 코딩 분야에서 챗지피티는 가공할 위력을 보여주고 있다. 과거에는 구글링 해서 관련 문법을 찾고, 이를 응용하고,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스택오버플로우를 뒤져가며 문제의 원인을 찾아 해결해 나갔다면, 이제는 그냥 "이런 동작을 하는 코드를 짜고 싶어, 파이썬으로"라고 치기만 하면 알아서 답을 내준다. 구글보다 챗지피티를 먼저 찾게 되었고, 스택오버플로우에 들어가지 않은 지도 한참 되었다.
기억나지 않는 문법을 찾는 것과 원하는 동작을 하는 코드를 짜는 것은 물론, 프로그램 언어 간 전환, 최적화(는 살짝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등 코딩을 하는 과정의 A부터 Z까지 챗지피티를 사용하지 않을 때가 없었다. 가히 나의 코딩 선생님이다.
그런데, 문득 어느 날 저번에 짰던 코드와 비슷한 코드를, 똑같이 질문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때 그냥 챗지피티가 내준 답을 조금 수정해서 복붙 했기 때문에, 구조와 문법이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별로 어렵지 않게 답을 받았고 똑같이 붙여 넣었다. 그러면서 조금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아 내 실력이 전혀 늘지 않고 있구나"
이미 내가 개발을 배울 때 즈음은 모든 코딩 과정은 구글과 함께라고 배웠고, 대부분의 개발자들에게 구글을 뺐으면 다들 멍청이가 될 거라는 인터넷 밈도 있었다. 그때도 이미 문법을 외우거나 직접 다 타이핑하기보다는 적절한 방법을 검색해서 적절하게 응용하는 것이 실력이었다.
그런데 그때는 그래도, 한번 짠 코드들을 오래 지나지 않아 비슷하게 짤 때는 과거에 검색하고 활용했던 기억들이 누적되면서 쌓여가는 느낌이었다. 챗지피티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내가 이 질문을 했었는지, 과거에 이런 코드를 어떻게 짰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그저 손쉽게 물었고 답을 얻어낸 다음에 복붙 해놨을 뿐이다. 코드를 짜는 속도가 생산성이라면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올라간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이 코딩 선생님은 문제를 푸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풀어주는 선생님이다. 내가 챗지피티가 풀어준 코드를 보고 스스로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공부하려고 노력하면 되지 않느냐 할 수 있겠지만, 당장 코드를 짜는 게 급한 상황에서 그런 생각을 하기 어렵다. 또 아무리 내 것으로 만들려고 해도 답지를 펼쳐두고 하는 공부에서 애초에 실력이 늘기도 어렵다.
과거에 말한 '등자'처럼, 어차피 모든 기마부대가 등자를 사용하면 될 일이기에 등자 없는 기마술을 상상할 필요가 없게 된 것이 맞을까? 코딩에서 뿐 아니라 다른 대부분의 분야에서 챗지피티의 의존성이 커지게 되면 어떻게 될까? 생산성 자체는 올라갔지만, 사고력은 형편없는, 챗지피티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그런 사람들만 모두 있게 되는 것일까? 인간 대부분을 의존하게 만들고, 그런 지배력을 가진 OpenAI는 어떤 방법으로 세계를 장악하려 들까?
생산성을 올리는 보조수단이라기에는 너무 강력한, 그래서 생각의 시간 자체를 줄여버리는 챗지피티를 쓰면서 어렴풋한 두려움이 생겨 소름이 돋는다. 아직은 다가오지 않을 AI와 공존하는 미래를 현명히 준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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