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원의 골목식당을 한참 재밌게 볼 때가 있었다. 연돈이니 포방터 아들이니 재밌는 에피소드도 에피소드였지만 나는 또 "식당을 운영하는 것과 시스템 트레이딩을 하는 것이 비슷한걸.." 하는 방송과 별 상관없는 생각을 하며 봤었다.
식당을 운영하는 것, 특히 식당을 맛집으로 만드는 것은 시스템 트레이딩을 하는 것과 유사한 측면이 많은 것 같다.
첫째, 레시피 개발이 핵심이며 무지 어렵다. 맛집을 만들기로 했으면 어떤 메뉴를 어떻게 만들어서 팔 것 인지를 결정해야 하는데, 다른 식당과 차별성이 있는 맛있는 메뉴를 만들기란 쉽지 않다. 특히 맛뿐 아니라 재료의 가격, 조리의 효율성까지 함께 고려해야 하는데, 요리를 많이 해보거나 식당을 운영해 본 적이 없다면 맨땅에 헤딩 같은 일일 것이다. 시스템 트레이딩에 입문하면 제일 처음 마주하는 난관이 이 레시피 개발과도 같은 전략 개발이다. 대부분 처음 진입할 때 어렴풋이 머릿속으로 구상했던 전략이 있지만 이 전략은 도저히 수익이 나지 않는다. 밖에서 팔만한 메뉴가 아니라는 것이다. 계속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서 맛있으면서도 팔 수 있는 레시피를 만들어야 하는데, 여기까지 못 만들고 포기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둘째, 레시피 연구의 끝을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 제법 팔만한 레시피를 하나 발견해 냈다 치자. 그 후에 다른 메뉴를 연구할지 만들어낸 레시피를 더 발전시킬지 선택하기가 쉽지 않다. 열심히 육개장을 연구해서 손님들이 호평할만한 육개장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육개장을 팔면서 매운 것을 못 먹는 손님을 위해 보완 메뉴인 맑은 국 메뉴를 추가할 것인지, 육개장 연구를 더욱 정진하여 육개장만 파는 최고의 맛집이 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정답은 없다. 현재 육개장 만으로 얼마큼 손님이 오게 될지, 다른 메뉴를 만드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육개장 레시피를 더 연구하면 얼마나 더 발전할 수 있을지, 시뮬레이션을 돌려보고 본인이 판단해야 한다. 시스템 트레이딩도 일단 시장에 적용시켜 볼 만한 하나의 전략을 만들면 비슷한 고민이 시작된다. 하나를 만들어내기도 이렇게 힘든데, 이 콘셉트의 전략을 더 발전시켜서 얘로 돈을 벌어야 하는지, 아니면 상관관계가 낮은 다른 콘셉트의 전략을 개발하여 상호 보완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만들어낸 전략이 얼마나 돈을 벌어다 줄지, 이 전략을 계속 붙잡고 있는다고 얼마나 더 개선시킬 수 있는 것인지, 새로운 전략은 얼마나 빨리 만들어 낼 수 있는지, 머릿속으로 고민하고 판단하는 수밖에 없다.
셋째, 경험치와 내공이 쌓이면 레시피를 만들어내는 속도가 달라진다. 백종원은 수많은 레시피를 개발해 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육개장 장사를 해본 적이 없어도, 이 육개장에 뭐를 추가하고 뭐를 빼고 어떻게 변경하면 손님들이 좋아할 만한 맛이 되는지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다. 사실 이것이 골목식당 프로그램이 가능한 이유다. 시스템 트레이딩도 마찬가지로 경험과 내공이 쌓이면 새로운 전략을 추가하는 시간이 점점 단축된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전략 콘셉트를 대충 듣고도 나의 노하우를 추가하여 내 것으로 금방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실제로 이런 수준에 도달한 고수에게 도움을 받은 적이 있는데 간단한 조언 만으로 전략의 수준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기도 했었다. 나도 언젠가는 이런 수준이 도달하기 위해 정진하고 있지만... 역시 쉽지 않다.
넷째, 레시피를 개발해도 꾸준히 실행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골목식당을 보면 좋은 레시피를 알려주고 잘 장사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알려줘도 그대로 실행하지 않는 빌런들이 자주 등장한다. 초심을 잃지 않고 성실하고 꾸준하게 장사를 해 나가는 것 역시 레시피 못지않게 어려운 문제다. 시스템 트레이딩도 마찬가지로 좋은 전략을 만들어 냈음에도 전략을 믿지 못하고 일희일비하다가 중단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 어느 정도 기복이 있는 전략임을 알고 있어도 한참 시장에 돈을 헌납하고 있으면 이 전략은 안 통하는가 보다 하고 운영을 중단해 버리기 쉽다. 1년 뒤에 다시 전략을 시뮬레이션해보면 이미 초과수익을 달성하고 있는 경우도 다반사다. 평정심을 가지고 꾸준히 운영하는 것은 어느 분야나 쉽지 않다.
다섯째, 사업 확장을 신중하게 해야 한다. 맛집을 성공적으로 운영한다는 것은, 다소의 직원을 고용해서 만들어 제공할 수 있는 음식과 이를 찾아주는 손님의 밸런스가 맞는다는 것이다. 규모를 너무 키워 직원에게 위임하는 것이 많아지면 요리의 맛, 서비스의 품질을 담보하기 어려울 수 있고, 가게는 확장하였으나 손님은 그만큼 증가하지 않는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사실 매출을 최대로 올리지는 못 하더라도 손님이 조금 줄을 서거나, 일부에게 못 팔더라도 당일 재료를 모두 소진시키는 것이 더 안정적인 상태일 것이다. 시스템 트레이딩도 마찬가지로 증액에 신중해야 한다. 돈이 좀 벌리는 것 같아서 무리하여(대출까지 사용하여) 증액하면 감당할 수 없는 손실을 맞이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못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최대의 수익을 내지 못하더라도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필요하다.
오늘도 맛있는 레시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자
'System trading'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업과 트레이딩 (1) | 2023.05.22 |
---|---|
운전과 트레이딩 (0) | 2022.12.27 |
도박과 트레이딩 (1) | 2022.09.12 |
차트 분석 도구 (0) | 2022.05.01 |
종목 추천좀 해줘봐 (0) | 2022.0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