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대통령 탄핵심판은 인용될 것이다. 그리고 재미있는 점은 국민의힘도 그것을 예상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국민의힘은 탄핵 인용 이후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있고, 그 일환 중 하나가 헌법재판관 흔들기다. 헌법재판관의 자질, 공정성에 미리미리 시비를 걸어두어서 탄핵결과가 나왔을 때 '그럴 줄 알았다'라고 하며, 지지층의 분노를 일으키고 정치적 결집을 유도하려는 것이다. 탄핵 기각에 조금이라도 희망이 있으면 이런 전략을 쓸 리가 없다. 보통 정치 사건의 법원 판결이 어떻게 날지 모르는 경우, 굳이 정치인들은 법관과 법원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다. 그러다가 자신들에게 유리한 판결이 나면 '공정한 판결', '그럴 줄 알았다'라고, 불리한 판결이 나면 그제야 '불공정했네', '판사가 편향되었네' 꼬투리를 잡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렇게 판결도 나기 전에 법관을 흔드는 것은 국민의힘 스스로도 패배를 거의 100% 확신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런데 실제 법관의 성향에 따라 판결이 바뀔 수 있나? 답은 '그렇다'다. 개별 사건의 판단과 형량은 판사 개개인의 재량에 달려있다. 그리고 (단순한 형사사건 같은) 어떤 판결 들은 유무죄와 형량만 정하면 되지만, 어떤 판결들은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판단이 달라질 수도 있다. 법관 성향에 따라 판결이 달라져도 괜찮나? 그에 대한 답 역시 '그렇다'다. 우리나라 사법신뢰도는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도, 다른 국가기관과 비교해도 상당히 높은 편에 속한다. 국민이 사법시스템과 사법부이 판단에 대해서는 수긍하고 받아들인 다는 것이다. 이런 신뢰도에 큰 영향을 끼치는 요인 중 하나가 법관의 독립성이다. 사법부의 수장인 대법원장이 사건에 개입하며 지휘하지 않고, 법관 개개인의 양심과 논리에 따라 판단하도록 하는 것이다. (검찰은 다르다. 검찰은 검사동일체의 원칙에 따라 검찰총장을 필두로 각각의 사건에 대해 공식적으로 하나의 검찰 입장만 있다.) 그리고 법관들은 증거와 증언들로 실체적 진실을 재구성하고, 그것을 법문에 적용시키는 과정을 훈련받은 사람들이다. 기본적으로 훈련받은 이 논리과정 안에서 판결이 이루어진다. 따라서 개인의 성향에 따라 어느 정도 재량은 있지만 완전 말도 안 되는 판결이 나오는 일은 거의 없다. 그리고 완전 말도 안 되는 판결을 계속 해온 법관이라면, 상위법원에서 여러 번 교정당하고 수정당해서 그것이 고쳐지거나, 아니면 헌법재판관을 할 정도로 고위 법관까지 올라가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판사 개개인이 양심을 걸고 판결하는 우리나라의 사법시스템을 신뢰한다.
그리고, 헌법재판소의 성질과, 헌법재판관에 구성에 대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헌법재판소법은 헌법재판관아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헌법재판소법 제4조)하도록 하고 있고, 헌법재판관은 정당에 가입하거나 정치에 관여할 수 없다(헌법재판소법 제9조)고 하여 재판관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이런 규정을 굳이 둔 이유는 역설적으로 헌법재판소가 다분히 정치적인 기관이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가 판결하는 위헌판결은 시대가 흐르면서 합헌에서 위헌이 되기도 한다. 간통죄가 합헌이었다가 위헌이 되기도 하고, 낙태죄가 위헌이 되기도 한다. 이는 국민들의 인식이 시대에 따라 바뀌면서 그 인식들이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이런 국민들의 인식 변화를 얼마나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지는 헌법재판관들의 성향에 달려있다.
그러면 헌법재판관들을 모두 진보적이거나 모두 보수적이어서 한쪽 편만 들면 어떡할까? 이런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 우리 헌법은 헌법재판관 9인의 구성을 대통령 3인, 대법원장 3인, 국회 3인이 선출(대한민국헌법 제111조 제2항 및 제3항) 하도록 하고 있다. 재판관의 선출 경로를 다양하게 두어서 한쪽 정치진영이 헌법재판소를 장악하는 사태를 방지하려는 취지이다. 아마 우리 헌법은 헌법재판소와 정치와의 관계를 아예 없애기는 불가능하니, 대신 재판관을 균형 있게 구성해서 운영하도록 하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9인의 선출경로를 자세히 살펴보면, 국민 과반의 지지를 얻어 민주적 정당성이 있는 대통령이 3인, 그리고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원장이 3인(대법원장은 민주적 정당성은 없지만, 국회의 동의를 얻는 점에서 이 정당성을 최소한으로만 확보하고, 오히려 전문성이 강조된 몫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대법원장도 대통령이 임명한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편향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국민이 선출한 국회에서 3인을 임명하도록 하고 있다. 통상 여당 1명, 야당 1명, 합의해서 1명을 해왔으나 이는 관례일 뿐이다. 이번 제22대 국회에서는 다수당을 차지한 야당에서 2명, 여당에서 1명을 선출하는 것으로 합의됐다. 이렇게 보면 오히려 헌법재판관의 구성은 여당에게 유리하다. 야당은 많아봐야 1~2명의 선출권만 가지고 있을 뿐이다. 다만, 헌법재판관의 임기가 6년이므로 전 정권에서 임명한 헌법재판관의 임기가 남아있는 경우, 현재의 집권세력이 헌법재판관을 원하는 대로 추천하지 못할 가능성은 있다.
다시 탄핵심사로 돌아와 보자. 우리 사법시스템이 법관의 개인의 양심에 따라 판결하도록 하는 것은 사법신뢰의 근간이며, 헌법재판관 역시 우리 헌법이 정하는 구성에 의해 임명된 것이다. 여기에 조금 진보적인 성향의 재판관이 있든, 보수적인 성향의 재판관이 있든, 그것이 모두 헌법이 정한 시스템 안에서 이루어진 일이라면, 그 판단 역시 존중해야 한다. 심지어 우리 헌법은 탄핵심판과 같은 중요한 판결의 경우, 소수의 정치 성향을 가진 재판관들이 합심하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 재판관 6인 이상의 찬성을 요건으로 정하고 있다(대한민국헌법 제113조 제1항).
이렇게 모든 것이 헌법이 정한 시스템 안에서 돌아가고 있는데 국민의힘이 걱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기각되려면, 8인 체재에서는 3인 이상의 기각의견, 9인 체재에서는 4인 이상의 기각의견이 있어야 한다. 대통령의 헌법위반이 방송을 통해 생중계된 상황에서, 아무리 낙관적으로 기대해도 이것은 무리다. 보수적인 성향의 재판관이 몇 명인지, 진보적인 성향의 재판관이 몇 명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실제로 탄핵소추가 부당하고, 기각될 것이 명백하다면, 진보적인 성향의 재판관이 한둘 있어도 문제없이 기각되지 않겠는가. 결국 그들은 탄핵인용이라는 패배를 예견하고, 벌써부터 부당한 판결 프레임을 가져오고 있는 것이다.
탄핵의 결정은 헌법재판소 단심으로 결정되며, 불복의 수단은 따로 두고 있지 않다. 국민의힘이 아무리 부당한 판결을 외치고 법관의 정치 편향을 이야기해도 탄핵결정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러고 나면 국민의힘도 언제 그랬냐는 듯 다음 조기 대선을 준비하기 위해 대오를 정렬할 것이다. 부당한 헌법재판소의 탄핵인용결정을 받고 충격에 빠져버린 일부 지지층을 자극하며 말이다. 그러나 이는 지지층의 결집에는 다소 도움 될지 모르나, 중도외연 확장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다음 대선을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통하지도 않는 헌법재판관 흔들기라는 치사한 짓 그만하고, 어떻게 민심을 얻을까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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