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개파 날이었다.
개강 전에 했던 수업, 신입생 설명회 등 여러 행사를 모두 빼먹었기 때문에 과 동기 중에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아싸 탈출의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각오를 다졌다. "여기서 실패하면 2년 동안 혼자야."
식사 자리에서 고기와 함께 맥주도 조금 들어가고, 같은 테이블에 앉은 동기, 선배들과 인사도 하고 이야기도 나눴다.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앞자리에 앉은 친구들끼리 번호교환을 하자며 핸드폰의 머리를 맞댔다. 오잉 저게 뭐지? 저렇게 하면 진동과 함께 서로 번호가 뜬다고 한다. 그러면서 서로 서로 핸드폰 머리를 맞대며 번호를 주고 받는 시간이 됐다. 영화 ET에서 손가락을 마주하며 인사하는 것 처럼 나에게는 조금 생경한 모습이었다. '네임드랍'이라는 기능이라고 한다. 그리고 조금의 의아함이 생겨서 물었다.
"그거 그런데 아이폰끼리만 되는거 아니야?"
갤럭시 스마트폰에 저런 기능이 있다고 들어본적은 없고, xx드랍 이라는 용어니, 에어드랍과 비슷한 아이폰의 기능이겠거니 추측됐다. 그런데 이 친구들은 아무도 서로의 핸드폰이 아이폰인지 갤럭시인지 묻지 않고 바로바로 네임드랍 기능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래서 생긴 위화감이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내 말을 못 들은건지 무시하는건지, 옆 자리 앉은 동기가 슥 쳐다보기는 했지만 별 다른 대꾸는 하지 않았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아 모두가 아이폰을 쓰는구나!'
이미 모두가 아이폰을 쓰고 있고, 그것은 서로에게 혹시 아이폰 쓰냐고 물어볼 필요도 없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이제 막 대학원생이 된 친구들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나 혼자 갤럭시 폰이었다. 갑자기 조금 부끄러워져 핸드폰에 손을 가져가서 주머니에 스윽 집어넣었다. 요새 학생들은 대부분 아이폰을 쓰고 갤럭시를 사용하면 갤저씨라고 놀린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중학생즈음 되는 아이들의 이야기인줄 알았다. 다니던 회사에서는 갤럭시 사용자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그때 확실히 알았다. 아무래도 아싸 탈출은 실패했다는 것을. 아니, 처음부터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었다.
어제도 말 없이 수업만 듣고 수업이 끝나면 집으로 서둘러 돌아갔다. 내일도 그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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