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 변론에서 "(계엄을 했지만 사실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까?
윤 대통령의 계엄은 실패했다. 계엄령이 선포되자마자 국회가 시민들의 도움을 받아 이를 즉시 해제했기 때문이다. 계엄을 통해 국회를 마비시키려던 그의 내란 시도도 미수에 그쳤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법적으로는 다르다. 형법 제89조는 내란죄의 경우 미수범도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즉, 내란이 실패했다고 해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계엄은 사회적, 정치적으로도 큰 피해를 가져왔다. 국민은 분열되어 대규모 집회를 이어가고 있고, 법원은 성난 군중에 의해 침탈당했다. 계엄에 참여한 군인과 관료들은 형사처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정치권은 내란 사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극심한 대립을 겪고 있고, 행정부는 다음 정권을 기다리며 사실상 일을 멈췄다.
이 외에도 계엄이 가져온 국가적 피해를 하나하나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이 글에서는 특히 국민들이 오롯이 감당해야 하는 경제적 피해에 대해 짚어보고자 한다.
먼저, 환율의 상승이다. 계엄 이전 1,400원 전후이던 원/달러 환율이 12.3. 계엄 이후 1,470원 가까이 치솟았다. 현재 2월 말 기준 1,461.80원을 기록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만 봐도 4% 이상 상승했다. 원화로 측정되는 한국의 모든 자산이 세계 기준으로 4% 이상 줄었다고 볼 수 있다. 100만 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자산이 당장 96만 원으로 쪼그라든 셈이다.
또한, 수치상 오른 환율뿐 아니라 대응 과정에서 발생한 정책비용까지 고려해야 한다. 원/달러 환율이 1,500원까지 오르지 않고 방어가 된 것은 외환당국의 적극적인 안정화 움직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2월 5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외환보유액 통계에 따르면 1월 말 기준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은 4,110억 1,000만 달러로 지난해 12월 말보다 45억 9,000만 원 감소했다. 이는 2020년 6월 4,107억 달러 이후 4년 7개월 만에 가장 적은 규모다. 이는 한국은행이 경제 위기 상황에 가용할 수 있는 실탄을 빠르게 소모하고 있다는 의미다.
환율 상승이 가져오는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환율이 상승하면 원유, 가스, 등 한국이 수입하는 원자재의 가격이 상승하고, 이는 소비자 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수입물가지수 잠정치를 보면 2025년 1월 수입물가지수는 145.22(원화 기준, 2020년 = 100)로 2024년 11월 138.80, 12월 141.98에 이어 계속 상승하고 있다. 계엄 이전인 11월과 비교하면 2025년 1월 수입물가지수는 4.6% 상승했다. 이는 고스란히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이어진다. 인플레이션 역시 국민이 보유하고 있는 현금의 가치를 훼손시킨다.
주식시장은 어떠한가. 2024년 7월 2,891.35까지 갔던 코스피지수는 계엄 이후 2024년 12월 9일 2,360.58까지 떨어지며 투자시장의 불안감을 그대로 보여줬다.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이 소추되고, 구속이 이루어지면서 정국이 안정세를 보이자(2차 계엄이 있을 수 있다는 공포가 시장에 있었다) 차츰 회복해 현재는 2,600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겠다고 외치던 윤 대통령은 오히려 한국이 투자하기에 위험한 시장이라는 것을 세계에 보여준 셈이다.

정치적 불안은 대외신인도를 하락시키고 한국에 대한 투자 심리를 위축시킨다. 계엄이라는 국가비상사태가 빈번히 일어나는 나라에 투자하고 싶은 해외 자본은 없다. 다행히 지난 2월 6일 국제 신용평가사인 피치에서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안정적'(AA-)으로 유지하면서 국가신용등급이 하락하는 사태까지는 면했다.
그리고 트럼프 2기가 출범했으나, 계엄의 여파로 정상외교를 책임져야 할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면서 전혀 대응을 못 하고 있다. 트럼프는 집권 후 관세상승 압박을 하며 전 세계를 상대로 협상을 하고 있다. 영국, 일본, 프랑스 등 주요국은 나름의 방법으로 트럼프 달래기에 나서고 있다. 대미 무역의존도가 아주 높은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정상회담은커녕 트럼프와 통화 한 번 하지 못 했다. 트럼프의 관세폭탄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면, 한국 경제의 큰 축인 반도체 산업과 자동차 산업 모두 피해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 같은 경제상황을 고려한 것인지, 한국은행은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6~1.7%로 조정했다. 지난해 11월 한국은행은 2025년 성장률을 1.9%로 예상했는데, 약 0.2%p 하향 조정한 것이다. 이미 계엄으로 인한 실물 경제에 대한 피해가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계엄으로 인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 절대 아니다. 대한민국 경제는 많은 대가를 치르고 있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이 받고 있다. 환율이 폭등해 국민 모두의 재산을 하루아침에 감소시켰을 뿐 아니라, 대외신인도에 나쁜 영향을 주어 투자 심리를 크게 위축시켰다. 이미 벌어진 피해는 어쩔 수 없다. 우리의 재산과 경제를 지키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조속히 내란세력을 진압해 국가를 정상화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그 예방책을 만드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한국은 외환위기와 같은 여러 위기들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더 단단하게 성장해 갔던 많은 경험들이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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