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 기각 판결 - 헌법재판관 임명 부작위는 위법하나 중대하지는 않다
2025년 3월 24일 한덕수 국무총리에 대한 탄핵심판 청구가 기각됐다. 결과는 기각 5인, 인용 1인, 각하 2인이다. 가장 중요한 쟁점은 한덕수 국무총리가 국회가 추천한 헌법재판관을 임명하지 않았다는 것이 위법한 지, 그리고 파면할 만큼 중대한지 여부다. 재판관 4인(문형배, 이미선, 김형두, 정정미)은 헌법재판관 임명 부작위는 헌법 등을 위반한 것이나, 파면할 정도로 중대한 사유는 아니라고 보았다. 김복형 재판관은 헌법재판관 임명 부작위가 위법하지 않다고 하였고, 정계선 재판관은 헌법재판관 임명 부작위가 헌법과 법률 위반이며 파면할 정도로 중대하다며 탄핵 인용 의견을 냈다.
헌법재판소는 앞선 2월 27일 최상목 권한대행이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은 것이 국회 권한을 침해한 행위라고 판단하기도 했다. 헌법재판소는 “헌법 제111조 2항과 3항에 따라 국회가 갖는 재판관 3인 선출권은 헌재 구성에 관한 독자적이고 실질적인 것”이라며 “대통령은 국회가 선출한 자에 대해 재판관 임명을 임의로 거부하거나 선별해 임명할 수 없다”라고 했다. 그러니까 헌법재판관을 임명하지 않는 행위는 위법하기는 하지만 중대하지 않다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입장이다. 과연 이것이 중대하지 않은 위법일까?
민주주의의 핵심 원칙 - 가역적인 선택
민주주의의 핵심 원칙 중 하나는 가역적인 선택이다. 즉, 국민의 선택에 대해서, 국민이 잘못됐다고 느끼는 경우 이를 되돌릴 수 있어야 한다. 국민이 투표를 통해 권력을 부여했으니 그 권력자가 권력을 남용하거나 위법을 일삼는 경우, 국민은 이를 심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심판의 방법은 여러 가지다. 새로운 선거를 통해서 집권세력을 바꾸는 것도 일종의 심판이다. 그리고 임기를 기다리지 않고 중간에 권력을 회수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는 임기를 중단시키는 방법으로 탄핵 절차를 두고 있다. 구체적으로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200명의 찬성을 통해 탄핵소추안을 의결하면, 헌법재판소가 파면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즉, 민주주의에서 가역적인 선택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헌법재판소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독재를 하는 방법 - 시스템의 일부를 무력화
독재가 이루어질 때는 아무 시스템도 없는 상황에서 갑자기 폭군이 나타나 독재를 하는 것이 아니다. 독재도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는 명분이 있어야 한다. 히틀러는 바이마르 헌법의 토대 위에서 헌법을 하나씩 무력화하며 독재 체제를 완성해 갔다. 이승만 대통령도 개헌과 부정선거를 통해 독재를 하려 했으며, 박정희 대통령도 유신개헌을 통해 독재 체제를 만들었다. 그러니까 권력을 얻은 자가 기존의 시스템에서 민주주의의 원칙 중 몇 개만 무너뜨리면 쉽게 독재 체제를 만들 수 있다. 대표적인 수단이 임기 제한을 없애거나, 대통령에 대한 견제 세력인 의회를 해산하는 것이다.
그리고 독재의 방법 중 하나가 바로 탄핵 절차를 무력화하는 것이다. 탄핵 절차를 무력화하면 대통령이 어떤 위법행위를 하고 국민을 배신해도 파면되지 않는다. 국민은 자신들의 선택을 되돌릴 수 없다. 그리고 탄핵 절차를 무력화하는 아주 손쉬운 방법은 헌법재판관을 임명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 헌법에 따르면, 헌법재판관 9명 중 3명은 대통령이 직접 임명하고, 대법원장이 추천한 3명과 국회가 선출한 3명을 대통령이 임명한다. 만약 대통령이 직접 임명해야 하는 3인만 임명하지 않아도 헌법재판소는 6인 체제가 되어 탄핵이 어렵게 된다. (대통령 탄핵은 6인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심지어 국회가 선출한 사람도 임명하지 않아도 된다면 사실상 헌법재판소 자체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으로 말이다.
헌법재판관 임명 부작위가 과연 중대하지 않나?
헌법재판소는 결정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통령 권한대행인 피청구인이 헌법재판관 임명을 거부한 것이 헌법 제66조, 제111조 및 국가공무원법 제56조를 위반하였다고 하더라도, 피청구인의 헌법재판관 임명 거부가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을 진행하는 헌법재판소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목적 또는 의사에 기인하였다고까지 인정할 증거나 객관적 자료는 발견되지 않는다.
헌법재판소는 국무총리의 헌법재판관 임명 거부가 탄핵심판을 진행하는 헌법재판소를 무력화시킬 목적에 기인하였다는 증거가 없다고 한다. 물론 국회가 헌법재판관 선출을 의결하고, 대통령이나 권한대행이 이들을 바로 임명하지 않았다고 무조건 탄핵감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다르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이 이미 헌법재판소에 청구되어 있다. 이 경우 헌법재판관을 임명하지 않는다는 것 자체로 헌법재판소를 무력화시키고 탄핵 절차를 방해하려는 목적으로 볼 수 있다. 이보다 중대한 파면 사유가 있나.
한덕수 국무총리는 여야의 합의를 재판관 임명의 전제조건으로 변명했다. 그렇다면 논리적으로 여당이 아무리 소수라도, 합의만 거부하면 사실상 탄핵절차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헌법재판소의 논리대로라면 독재 체제를 만드는 과정에서의 모든 사전 작업을 제지할 수 없다. 독재를 하겠다는 객관적 자료를 발견하기 어려울 테니 말이다. 그러나 독재가 시작되면 늦는다. 독재의 수단이나 과정이 될 수 있는 일은 아주 엄격한 기준으로 보아야 한다. 헌법재판소는 스스로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라는 자격을 버린 셈이다.
마지막으로 아래는 정계선 헌법재판관의 국무총리 탄핵 인용의견이다. 새겨들어야 할 내용이다.
피청구인은 국회가 선출한 재판관의 임명을 거부하면서 여야의 합의를 임명의 전제로 내세워 마치 여소야대의 정치 상황에서 소수의 절차적 보호를 통한 실질적 대의제의 실현을 강조하는 듯한 발언을 하였지만, 실상은 헌법재판소가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 사건을 심리하게 되자 당시 6인 체제로 운영되어 심리 정족수조차 충족하지 못하고, 남은 6인의 재판관 중 2인도 임기 만료로 퇴임이 예정된 헌법재판소의 내부적 상황을 이용하여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 사건 진행을 지연시키거나 방해하고자 하는 일각의 의사를 고려한 것으로 이는 피청구인이 형식적 명분으로 내세우는 여야의 합이나 실질적 대의제 실현이 아닌 소수 여당의 의도나 계획에 부합하는 일방적인 국정운영이라 할 것입니다.
여소야대 국회에서 소수 여당은 실질적 민주주의에서 보호하고자 하는 진정한 의미의 소수자라고 할 수 없는 바, 소수 여당의 뜻에 따라 국회 의결을 좌우하고자 하면 대통령을 견제하는 국회의 책무을 다할 수 없게 됩니다.
한편 피청구인에 대한 탄핵 소추 의결 후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하게 된 기획재정부 장관이 2인의 재판관을 임명한 것을 피청구인에게 유리한 사유로 삼을 수는 없고 현재 재판관 1인의 미임명으로 인한 헌정질서의 위기도 피청구인으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종합적으로 피청구인은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하는 국무총리로서 대통령의 직무정지라는 상황에서 불필요한 논란을 최소화하고 국가적 혼란을 신속하게 수습하여야 할 일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위와 같은 헌법 및 법률 위반 행위로 인하여 논란을 증폭시키고 혼란을 가중시켰으며, 헌법재판소가 담당하는 정상적인 역할과 기능마저 제대로 작동할 수 없도록 만드는 헌법적 위기 상황을 초래하는 등 그 위반의 정도가 파면을 정당화할 수 있을 정도로 중대합니다. 그렇다면 이 사건 심판 청구는 이유 있으므로 피청구인을 파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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