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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화
어릴 때부터 게으른 편이었던 것 같다. "귀찮다"라는 말을 너무 자주 써서 어머니께 혼난 적도 많았다. 중학교 때는 수업시간 내내 졸아서 수업 끝나고 교무실로 따라오라는 선생님의 말에 "귀찮은데"라고 말했다가 흠씬 맞기도 했다.(그때는 그렇게 때려도 되는 시절이었다.) 반복적으로 연습해서 깊은 내공을 쌓아야 하는 일은 싫었다. 그나마 효율적인 방법을 찾는 잔머리는 조금 돌아가서 어떤 일이든 빠르게 배우고 약간의 성과만 내면 금방 질려했다. 그 이상을 쌓으려면 진득한 노력이 필요했으니까 말이다. 공부에 있어서도 성실함 보다는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의 효율을 내는 방법만 찾았고, 그저 그 정도 했던 것 같다. 취미생활도 마찬가지다. 게임도 어릴 때는 곧잘 배워서 새로운 게임을 시작할 때는 친구들보다 늘 잘했..
네임드랍은 아이폰 끼리만 되는거 아니야?
대학원 개파 날이었다. 개강 전에 했던 수업, 신입생 설명회 등 여러 행사를 모두 빼먹었기 때문에 과 동기 중에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아싸 탈출의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각오를 다졌다. "여기서 실패하면 2년 동안 혼자야." 식사 자리에서 고기와 함께 맥주도 조금 들어가고, 같은 테이블에 앉은 동기, 선배들과 인사도 하고 이야기도 나눴다.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앞자리에 앉은 친구들끼리 번호교환을 하자며 핸드폰의 머리를 맞댔다. 오잉 저게 뭐지? 저렇게 하면 진동과 함께 서로 번호가 뜬다고 한다. 그러면서 서로 서로 핸드폰 머리를 맞대며 번호를 주고 받는 시간이 됐다. 영화 ET에서 손가락을 마주하며 인사하는 것 처럼 나에게는 조금 생경한 모습이었다. '네임드랍'이라는 기능이라고 한다. 그리고 조..
의대 증원에 대한 생각
의대 증원으로 나라가 시끄럽다. 대통령실에서 총선 어젠다로 대표적인 기득권 전문직인 의사 때리기에 나섰고, 국민들의 반응도 좋은 편이다. 국민들이야 대다수 기득권 의사들과 관련이 없으니(없다고 생각하니) 당연하다. 이런 류의 정책은 선거를 앞두고 늘 있는 일이지만 이번에는 의사들의 반발도 심상치 않다. 최근 전문의 수련을 받고 있는 친구를 만나 술을 먹었다. 어찌 사느냐, 이 사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심층적으로 물어볼 계획이었지만, 이미 사표 쓰고 쉬고 있다는 말에 적잖이 놀랐다. "이 친구야 이제 갓 태어난 딸도 있고, 모아둔 돈도 없으면서 괜찮겠어?", "몰라. 그렇다고 개돼지 취급받을 수는 없잖아." 친구에게 의료계 입장을 이것저것 들었다. 예상했던 대답도 있고 예상치 못했던 대답도 있었다. ..
Bilingual이 가능할까
LA를 여행할 때 한인타운에서 유명한 BCD 순두부를 먹으러 갔다. LA에서 시작해서 한국으로 역수입된 LA 한인타운에서 가장 유명한 한식집이다. 조금 이른 저녁 시간에 갔는데도 대기시간이 1시간 가까이 되었다. 그 와중에 예상치 못한 비까지. 그나마 다행인 점은 천막을 쳐 두고 대기하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을 마련해 두었다는 점이다. 순번을 기다리면서 주변을 둘러보니 그 풍경이 새삼 흥미로웠다. 30~40명의 대기 인원 중 90%가 한국인이었다. 미국 여행 중이 맞나 잠깐 착각이 들 정도. 한국인 친구와 같이 오지 않고 백인이나 흑인끼리 온 팀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한인 외모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다닥다닥 붙어서 기다리다 보니 몇몇의 대화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한국말로 대화하는 팀. 영어로 대화하는 팀..
사막 위의 플랫폼 - 라스베이거스
미국 여행 중에 라스베이거스를 들려 즐거운 관광의 시간을 가졌다. 라스베이거스를 처음 방문하여 거닐면서 몇 가지 느낀 점을 기록해 본다. 1. 자본주의의 도시 라스베이거스는 자본주의의 환상을 심어주는 도시라는 느낌을 받았다. 자본주의 체제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세뇌하고 자극한다. 실제로 부자인 소수에게 굉장히 많은 권력이 집중되어 있으면서도 "너도 돈이 있으면 다 누릴 수 있는 것이야"라고 선전한다. 그리고 능력에 따라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다고 표방하여 자본에 따라 실질적인 계급이 정해지는 것을 사람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도록 한다. 또, 사람들의 소비욕구, 신분상승욕구, 과시욕구를 자극해 부의 결핍을 느끼도록 하고, 더 많은 노동과 소비를 강요한다. 이런 자본주의의 세뇌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첫째, 직접..
실리콘밸리 여행과 커피챗
회사를 휴직하고, 대학원 개학을 준비하는 사이에 시간을 내서 미국여행을 하고 있다. 형이 실리콘밸리 지역에서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에, 가족들도 볼 겸 겸사겸사 서부를 다니기로 했다. 실리콘밸리 근방을 여행 다니면서 정말 이 동네는 세계의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민자 국가인 미국이 여태까지 백인 위주로 구성된 사회였다면, 이 지역에서부터는 정말 세계의 다양한 인종이 한 곳에 모이는 느낌이다. "where are you from?"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애초에 아시아인이 너무 많아서 여행객처럼 보이지도 않는 것 같다. 이런 와중에 고마운 분 덕에 좋은 기회로 실리콘밸리에 진출해서 고군분투하는 한인 스타트업계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주로 한국인이 미국에서 하는 ..
궤도의 과학허세
침착맨에 궤도만 나오면 두 시간 짜리 영상이든, 30분짜리 영상이든 놓치지 않고 챙겨보는 궤도 팬인데, 어느 날 보니 쓰신 책이 있길래 망설이지 않고 구매했다. 나중에 보니 원래 2018년 즘 출판한 책인데, 2022년에 리커버 판으로 다시 출판한 모양이다. 2022년이면 궤도가 침튜브에 나와서 본격적으로 유명해지기 시작할 때고, 나도 이 즘 알게됐었다. 아마 그래서 한 번 더 출판한 모양이다. 궤도는 과학 상식에 대해서 시니컬하면서도 친절하게, 담담하면서도 열정적이게, 그리고 끊임 없이 설명하는 모습이 매력적이다. 그런 책을 기대하고 샀는데, 생각했던 것이랑은 조금 달랐다. 과학적 상식, 에피소드에 대해서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과학입문서로는 좋은 책이다. 그런데, 너무 친절하게 보이고 싶은 나머지 가볍..
전략을 몇 개까지 개발해야 할까?
투자나 트레이딩, 특히 시스템 트레이딩을 잘 모르는 사람과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늘 어렵다. "프로그래밍 짜서 주식을 자동으로 사고팔도록 해놔요." 정도로 설명하면 "우와 신기하네요"하고 넘어가는 사람도 있고, 흥미를 보이며 이것저것 물어보는 사람도 있다. 그래도 이것저것 물어보는 사람이 주식이나 알고리즘 트레이딩에 대한 이해가 조금 있으면 대화가 즐겁게 흘러가는 편이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저게 대체 무슨 말이지' 하는 표정을 맞이하고, 나도 무어라 더 설명할 용기를 잃은 채 화제를 돌리게 된다. 원래 새로운 분야를 알게 되는 것을 좋아하는 성향이면서, 평소 투자에 관심도 많고, 시스템 트레이딩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던 사람이라면 꽤나 흥미를 보이며 내가 하는 일을..